2011년 6월 3일 금요일

강원도 양구

강원도 양구가 수도권처럼 가까워졌다. 지난주 광화문에서 양구읍까지 2시간5분 걸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길이 그만큼 편해졌다. 일단 서울~춘천 도로구간만 따지면 40분. 여기서 46번 국도를 타면 배후령이란 고개를 하나 넘게 된다. 배후령을 지나 양구로 이어지는 길은 지난해말 양구읍 앞까지 뚫린 터널 덕에 화천 파로호 자락을 구불구불 돌지 않고 직행할 수 있다. 춘천~양구 구간은 50분이다. 군 생활을 양구에서 했던 사람이라면 춘천 102보충대에서 자대 배치 받고 주먹밥까지 받아들고 소양강에서 배타고 들어가던 기억을 떠올릴지 모른다. 아니면 인제에서 구불구불 들어가던 양구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겠다. 그땐 어느쪽이든 최소 5~6시간 걸렸다. 하지만 조금 일찍 서두르면 양구가 하룻길 여행지로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놀이를 나온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수입천 줄기에서 천렵을 하고 있다.


그럼 양구에선 무엇을 볼까. 강변에서 물놀이만 해도 좋다. 양구는 지금도 최전방이다. 과거엔 너무 멀었고

많은 부분이 민통선으로 묶여있던 까닭에 파헤쳐지거나 오염되지 않았다. 양구 수입천은 제법 놀기 좋은

물놀이터다.

수입천 물줄기를 쫓아가면 북한의 금강산 줄기라고 한다. 이 물줄기가 두타연을 돌고 나와 화천 파로호로 흘러드는 것이다. 방산면 신병교육대 부근까지는 상수원 보호구역. 그 너머부터는 보호구역에서 벗어난다. 수입천

물줄기는 약 35㎞ 정도 된다. 강줄기가 깊지 않고 자박자박 걸어들어갈 수 있는 낮은 곳이 많다.

물놀이 하기에 딱 좋다.

일단 방산면 오미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양구읍에서 방산면 자기박물관을 지나 달리다보면 자그마한

강줄기와 만났다 헤어졌다 하게 된다. 이게 바로 수입천이다.

방산면 남전교 부근에선 물놀이를 나온 가족들이 줄낚시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함께 갔던 오민수
양구군청

축제이벤트계장은 "수입천은 원래 양구시민들이 물놀이를 하던 곳"이라며 "장마끝이라 물도 깨끗해졌으며

앞으로 수량이 더 줄어 물놀이 하기엔 더 안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전교 앞 수입천은 맑았다.

실제로 깊지 않았다. 발목에서 무릎 정도까지 찼다.

사실 1970~80년대만해도 최고의 피서지는 강변이었다.
미루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앉아 강물에 멱감던

게 최고였다. 강줄기엔 수박 한덩이를 담가두고 솥을 걸고 국수를 끓여 먹었다.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웬만한 강줄기에서는 취사할 수 없지만 강변은 추억의 물놀이터임에는 틀림없다.

양구군 방산면 오미리 남전교에서 내려다본 수입천.


수입천을 계속 따라가봤다. 양구사람들도 잘 모른다는 파서탕이 수입천의 끝자락이다. 파서탕교를 지나 비포장길을 타고 달리면 민박집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파서탕 입구다. 파서탕은 계곡 끝부분이다. 움푹 파인 암반지대가 마치 호수처럼 생겼다. 옆에는 모래밭도 있다.

원래 이 지역은 군부대가 있던 자리. 빈장군이란 예비역 장성이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군인들만 슬그머니

놀러왔다 가는 곳이었다. 외지고 한적해서 놀기 좋은 강줄기이지만 가는 길이 좁아서 승용차 교행이 어렵고,

비포장이라 불편한 것이 단점이다. 민박집을 이용하는 사람만 파서탕을 이용할 수 있단다.

아이들과 가기에는 외려 남전교 앞뒤의 수입천이 훨씬 좋아 보인다. 방산 자기박물관 옆에 있는 직연폭포

역시 주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직연폭포는 높이가 10여m 정도 되고, 깊이는 20m가 넘는다고 한다.

폭포 옆에 보가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쉬기에 좋고 텐트치며 노는 사람이 많다. 폭포에는 지역 청소년들이

다이빙을 하는 곳이지만 어린 아이들이 놀기엔 위험한 편이었다.

코스를 짠다면 양구 입구의
박수근 미술관에 잠시 들렀다가 물놀이는 남전교 주변이나 직연폭포 옆 수입천에서 하고, 자기박물관과 정중앙천문대, 양구읍내 한반도 섬을 들르는 것도 좋겠다. 박수근의 작품은 국내 화가의 작품 중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해 이름난 작품은 없다. 대체로 무명시절의 습작이 많지만 비운의 화가 박수근의 생애를 짚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미술관 뒤에 묘소도 있다. 방산자기박물관은 고려 때부터 백자를 만들었던 곳이다. 조선 백자의 원조격인데 이성계 발원문이 담긴 백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정중앙천문대는 날씨가 좋은 날 밤에 찾아야한다. 조금만 흐려도 망원경을 닫아놓는다고 한다. 한반도 섬은 양구 서천과 파로호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습지다. 한반도 모양으로 돼 있고 산책로가 놓여있다. 두타연 트레킹도 고려해볼 만하다. 다만 군사지역이라 2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과거 양구하면 철책선이나 땅굴을 떠올렸다. 펀치볼과 을지전망대 같은 전적지 여행만 생각했다. 까마득하게 멀었다. 전라도의 해안마을이나 경상도의 산촌마을 못지않은 벽지였다. 천지개벽해서 지금은 수도권처럼 가까워졌으니 올여름 알뜰 휴가지로 한 번 고려해볼 만하다.

길잡이
*수입천은 방산자기박물관을 기점으로 오미리 방향으로 가면 된다.
*8일부터 16일까지 9일 동안 열리는 양구배꼽축제를 챙겨볼 만하다. 민물고기잡기, 백토머드체험 등 놀거리도 있지만 가장 좋은 정보는 무료 텐트대여. 양구군 서천변 청소년수련관 앞에 야영장을 설치하고 5인용 텐트를 무료로 빌려준다. 무료 텐트는 모두 100동이며 주변에 샤워장, 수영장이 들어선다. 대여기간도 1박2일부터 8박9일까지 제한이 없다. 선착순이다. 대여신청(033-480-2229, 2230)

*박수근미술관(033-480-2655)은 입장료 1000원, 어린이 500원. 매주 월요일 휴무. 방산자기박물관(033-480-2664)은 체험비 1만원. 국토정중앙천문대(033-480-2586)는 2000원, 어린이 1000원.

*양구초등학교 맞은편 찜질방 양구불가마한증막(033-481-2410)이 꽤 유명하다. 장작을 땐다. 양구읍 양구KCP호텔(033-482-7700), 양구읍에서 춘천방향에 있는 푸른솔농원(033-481-1357), 동면 팔랑리
풀하우스 펜션(033-481-0422), 방산면 오미리 산골나그네(033-481-3975)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광치휴양림 가는 길에 있는 광치막국수(033-481-4095)가 가장 좋았다. 평일에도 사람들로 북적였고, 국수에선 메밀향이 짙게 배어났다. 5000원. 수육은 1만원인데 멋내지 않고 접시에 고기만 담아냈다. 민들레전(6000원)은 조금 단 게 단점. 석장골
오골계(033-482-0801)는 숯불구이집인데 거무잡잡한 오골계만 보면 식욕이 생기지 않지만 맛은 꽤 좋다. 3만원. 양이 적은 게 흠이다. 명품관 인근 우리집식당(033-481-5890)의 북어국이나 방산면에서 양구읍 방향 도고터널 못미쳐 있는 청수골(033-481-1094)의 산채정식도 양구에선 알려진 집이라고 한다.

*통일고랭지 영농조합법인(033-481-8850)의 말린 나물, 산호박식품(033-482-5245)의 산호박찐빵, 예닮식품(033-481-8989)의 곰취찐빵이 양구 특산품이다


2011년 5월 3일 화요일

뿌리에 관한 이야기

http://blog.naver.com/33127611/90082499746

유재석... 사람에 대한 고찰..

" 1~2년 이미지 관리는 쉽지만 유재석은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성격이 그렇다"

유재석,,,,, 넌, 한참을 형으로 하여금 생각하게끔 만든다,
얘기의 깊이도 나완 다르고,
생각의 깊이도 나완 다른 너에게 형이 감사하고
넌즈시 어께 넘어로 배울 뿐이다.
수없이 많은 방송인을 만나 봤지만 , 넌,너야.
진실되고 거짓없고,사람을 기만하지 않고,,,,,,,,
이놈 정말 내가 심봤다.

▶ 개그맨 강호동씨가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에서




2. 수없이 많은 개그맨과 또 다른 연예인을 봤지만
유재석과 차인표라는 두사람은 존경스러우리 만치 대단하다.
재석이는 늘 봐 오지만---그놈은 오래오래 인기가 있어야만 하는 놈이다.
왜? 늘 자기를 낮추고 욕심을 버리고 주변을 돌아 보는 아이니까.
그녀석이 한번도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결정하고 행동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난, 이번 지방선거를 보며 이 두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도 또 반성한다.
유재석,차인표를 벤치마킹하자.
이들을 닮자.
오늘밤 이둘의 스타성과,공인성이 영원하길 기도한다.
아울러 정치인,행정인 모두가 그렇게 되길 바란다.

▶ 개그맨 표영호님 미니홈피에서 펌-




사례1. 2004년 제 40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행사 관계자들은 짜증이 나 있었다.
주요 부문도 아니고 기타 분야 상 후보자들 일부가 '상을 안 주면 시상식에 참가 안 하겠다고' 버티는 통에 자리에 앉혀 놓느라 애를 먹었기 때문. 가까스로 정리는 했지만 혹시라도 자신이 수상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한 해를 대표하는 MC-개그맨을 가리는 TV예능상 부문 시상 차례. 후보 유재석과 김제동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유재석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정상의 MC로 손꼽혔지만 큰 상은 아직 수상 못한 처지. 김제동은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였다. 상은 의외로 김제동 차지였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김제동에게 유재석이 꽃다발을 들고 무대까지 올라와 진심 어린 축하를 전했다. 다른 스타였다면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수도 있었다

▶ 출처 최영균 인사이더-




사례2: 방송사 대기실 옆 흡연실. 유재석이 담배를 피고 있다. 그냥 보기에도 네댓살은 어린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건다. 유재석은 담배를 얼른 재떨이에 비벼 끈 후 자세를 바로 잡고 상냥하게 말을 받는다. 말을 건 사람은 유재석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평범한 연예계 관계자였다.

▶ 출처 최영균의 인사이더-





사례3: "얘기 즐거웠습니다. 언제 술이나 한 잔 하시죠." "좋죠" 스타들과 자주 하게 되는 대화지만 실제로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냥 인사인 것이다. 이런 대답을 하는 스타 중에 술을 못 먹는 사람도 꽤 있다.
"술 한 잔 했으면 좋겠네요" "어, 제가 술을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식사를 하시는 게 어떨까요. 제가 스케줄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문자를 보내주시면 연락을 드릴 테니 약속을 잡아서 한 번 보시죠." 유재석은 이렇게 답한다.

▶ 출처 최영균 인사이더




상은 그 수상자를 빛내준다. 그런데 그 상을 받는 사람이 역으로 상을 빛나게 해주는 경우도 있다. 상은 실력과 그 성과에 대해 수여되는 것이지만 수상자가 인격적으로도 훌륭할 경우 상의 가치까지 높아 보이게 만들게 때문이다. 유재석이 그러하다.

유재석이 지난 1일 제 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TV진행자상을 수상했다.
잔잔한 상은 그 이전에도 꽤 수상했지만 대상에 해당하는 상은 작년 연말 KBS 방송대상 이후 두 번째다. 유재석은 2002년부터 신동엽 강호동 김용만과 함께 '4대 빅 MC'로 자리매김했지만 상복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방송 3사 모두에서 주력 예능프로그램의 MC를 독차지하며 사실상 최고의 MC로 올라섰고 이제는 행여 상을 주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가 없는 위치에 우뚝 서 있다.

유재석은 연예 관계자들 사이에서 TV에서의 좋은 이미지와 실제가 같은 몇 안 되는 연예인 으로 꼽힌다. 순수하고 참한 이미지의 연예인들이 실 생활에서는 적당히 때묻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 연예계에서 남다른 인물인 것이다.

글을 객관적으로 쓰기 위해 집필에 앞서 다시한번 연예 관계자들에게 유재석에 대해 물었다.
"혹시 유재석에 대해 안 좋은 소리 들은 것 없어?"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굳이 찾자면 짠돌이 정도?"

유재석에게는 짠돌이도 칭찬이라 생각된다.
남들 보다 긴 무명 시절을 거치면서도 알뜰히 돈을 모아 아버지의 사업 빚을 갚은 그다.
요즘 최고의 몸값으로 큰 돈을 번다고 해서 돈 잘 쓴다 는 소리가 나온다면 그것 또한 바람직한 것은 아닐 듯 하다. 뭐든 좋게 바라보게 되는 유재석,. 그의 좋은 품성, 따뜻한 개그가 계속 빛을 발하길 바라고 믿는다.

▶ 출처 최영균 인사이더-




늘 밴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유재석씨를 가까이에서 볼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가끔 지나칠 때마다 인사를 거르지 않는다. 가정교육을 참 잘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한번 "내 이름도 박명수요"라고 했더니 박장대소하며 "명수 형에게 알려줘야겠다"며 좋아하는 걸 봤다. 가끔 아내 나경은씨와 함께 저녁에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 쉬는 날 본인의 은색 그랜저XG를 타고 혼자 어디론가 가곤 한다. 부모님도 참 검소하고 소박하신 분들이다.

▶ 박명수씨(33·현대아파트 10동 경비원)

부인과의 산책......나경은 부러워.....



재석씨 어머니가 단골인데 며느리가 임신을 해서 그런지 직접 귤과 채리를 자주 사 가신다. 재석씨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는데 어머니도 무척 겸손하고 친절하시다. 가게 차린지 3년 됐는데 재석씨가 가끔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볼 뿐 동네에서 대면할 일은 별로 없다.

▶ 이동석씨(33·형제네 야채가게 주인)



2년 전 결혼할 때 유재석씨 집 도배를 우리가 했다. 깔끔한 흰색 벽지를 골랐는데 다른 연예인 집처럼 화려하지 않아 기억에 남는다. 한강변 60평대 아파트이지만 저층이라 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소음방지용으로 내부에 문을 하나 더 설치했을 뿐 다른 집과 똑같다. 결혼할 때 부모가 근처 아파트로 독립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재석씨가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해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부모님은 검소하고 소박한 분들이다. 웬만한 거리도 현대백화점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며느리가 신혼여행 다녀오며 악어가죽 가방을 사왔지만 쓸 일이 없다며 장농 속에 넣어두고 계신다.
▶ 이용성씨(54·캔두 인테리어 사장)





99년부터 2003년까지 유재석씨에게 안경을 팔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기가 높지 않아 그가 직접 와서 안경을 골랐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편이라 그런지 추천해주는 물건을 별 말 없이 사는 편이었다. 요즘엔 뿔테를 주로 끼지만 당시엔 금속테로 된 안경을 주로 썼고, 반무테도 즐겼다. 시력은 꽤 나쁜 편으로 기억된다. 양쪽 눈의 시력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안경을 벗으면 아마 꽤 불편할 것이다. 안경이 잘 어울리고 익숙해져서 라식 수술을 안 하는 것 같다.

▶ 오광석씨(48·로데오거리 광명안경 사장)




재석이형과 5년간 일하며 느낀 건 엉뚱한 구석이 많다는 점이다. 형이 운전을 좋아해 드라이브를 자주 했는데 돈이 없어서 1000원어치씩 휘발유를 넣고 다닌 적도 있었다. 주유원이 "1000원이요?"라고 물으면 형 대신 내가 "다음엔 많이 넣을게요"라고 답하곤 했다. 한번은 동호대교를 건너다가 기름이 떨어져 다리 위에서 차가 멈춰선 적도 있다. 내가 주유소 들르자고 얘기 했는데 형이 "괜찮다"고 말리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김용만·지석진형과 음료를 주문한 뒤 여섯 시간씩 수다를 떨어 카페 주인이 엄청 싫어했던 기억도 난다.
▶ 박성복씨(33·전 매니저)





유재석씨를 처음 만난 게 2006년 봄이다. 처음에는 굉장히 말랐지만 지금은 몸짱이 됐다. 가슴과 팔 근육이 특히 발달됐다. 해외 출장을 제외하면 일주일에 3~4일씩 헬스장에 들렀다. 러닝머신으로 시작해 근육 운동, 스트레칭 등 한 번에 2시간씩 쉬지 않고 운동했다.

운동하는 모습만 지켜봐도 "이 사람은 잘 될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다. 노홍철·길씨도 함께 다녔는데 한번은 길씨가 러닝머신을 잘못 작동해 재석씨가 팔꿈치와 무릎을 크게 다쳤지만 화 한번 내지 않는 모습을 보고 바르고 착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이어진씨(30·피트니스센터 트레이너)






유재석씨는 박수홍씨와 더불어 인사성이 가장 좋은 연예인이다. KBS 출입을 관리하는 우리에겐 첫인상이 중요한데 유재석씨는 10년간 한결 같다. 유재석씨가 KBS에서 타 방송으로 옮겨갔을 때 일이다. 갑자기 KBS로 찾아와서 "새 프로를 맡으셨냐"고 물었더니 "불우이웃 성금을 내러 왔다"고 하더라. 내 눈이 정확했다. 연약해 보이는 몸으로 프로그램을 많이 맡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 걸음걸이로 볼 때 무척 부지런한 성품이란 것도 말하고 싶다.
▶ 유성재씨(32·KBS 안전관리팀 직원)






유재석씨는 항상 허리를 90도로 굽혀 정중히 인사한다. 보통 식사할 때는 팬들의 사인 요청이 짜증스러울 텐데 한번도 거절하는 걸 못 봤다. 서둘러 나갔다가 종업원들이 사인 용지를 들고 있는 걸 보고 다시 들어와 사인해준 적도 있다. 한번은 '무한도전' 팀과 식사를 마친 후 옆 테이블에 있던 일반 손님의 밥값을 계산해 주는 것도 봤다.
▶ 강성근씨(39·경기 일산 고깃집 髾' 직원)






1999년부터 이듬해까지 KBS 2TV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에서 유재석씨와 함께 독거 노인에게 쌀을 배달하는 코너를 같이 했다. 최대한 여러집에 들러야 방송 분량이 나오는데 유재석씨는 한 집에 들어가면 쉽게 나오질 못했다. 할아버지·할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 콧물을 흘리느라 촬영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요즘은 리얼이 대세라 괜찮지만 그 당시만 해도 '다큐되는 것 아니냐'며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한번은 할머니 한 분이 고맙다며 검정 비닐봉지에 음료수를 건네자 재석씨가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하더라. "마음이 너무 아파 이 코너를 계속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재석씨 표정이 지금도 선하다.

▶ 심은하(SBS '연예특급' 작가)





재석이가 놀라운 건 국민 MC가 된 지금과 스무살 무렵이 너무 똑같다는 거다. 차라리 술이라도 먹으면 흉볼 거리가 생길 텐데, 솔직히 형의 입장에선 재미없을 만큼 바른 친구다. 재석이와 내가 대학개그제에 입상하게 된 배경엔 전태열이란 친구의 공이 크다. 성우가 된 그 친구 집에서 매일 개그 연습을 했다. 우리 둘다 그 친구집에서 빈대처럼 먹고 자며 신세를 졌다. 재석이는 연기에도 재능이 있어 개그맨이 되더라도 나중에 연기자를 겸업할 줄 알았다.

▶ 최승경(38·91년 KBS 대학개그제 데뷔 동기)





유재석은 10년간 같은 휴대전화 번호를 쓸 정도로 한결 같다. 동기 모임에 빠질 때도 항상 친구들에게 전화로 양해를 구한다. '메뚜기 춤'은 대학 시절부터 췄다. 당시엔 '낭랑 18세'를 부르며 폴짝폴짝 뛰었다. 대학 시절엔 '빌붙기의 달인'이었다. 당시 유재석은 나와 SB(슈퍼 빈대) 클럽을 결성해 여기저기 빌붙고 다녔다. 지면을 빌어 한마디 하고 싶다. "재석아, 최고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친구들은 항상 너를 최고로 인정한다."
▶ 김태균(37·서울예대 방송연예과 91학번 동기)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에서 ླྀ년을 이어라'라는 코너의 야외 MC를 맡긴 적이 있다. 메뚜기 탈도 그때 등장했다. 유재석은 성격이 소심해 핑클이나 god가 나오면 위축돼서 말도 제대로 못 했다. 토크가 약한 단점을 보와하기 위해 라디오에 고정 출연하며 감각을 익히던 모습이 생각난다. 술도 안 마시고 당구도 안 쳐 "넌 대체 낙이 뭐냐"고 물었더니 "전 그냥 까불고 노는 게 좋아요"라고 답했던 친구다.
▶ 김석윤(KBS PD)







[톱스타 성공 키워드]'배려의 미학' 유·재·석



'톱스타입네'하는 특권의식 없어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는 "프로의 가장 큰 조건은 예의, 곧 성품이다"라고 말했다. 당당함과 거만함이 때로는 매력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지 않다면 시간이 갈수록 불편해지게 마련이다. 잘 관리한 '이미지' 말고 사람에 대한 '진짜 예의'를 톱스타에게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긴 무명의 세월이 그를 단련시켜서일까. 유재석은 눈빛에 깃든 권위와 대우받고 싶어 하는 '톱스타입네' 하는 특권 의식이 없다. 막내작가 이름부터 외우고, 신인에게 하나라도 먼저 질문을 던져주는 MC 유재석의 힘은 모두 '배려'에서 나온다. 주목받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피곤함에 찌들어 있다거나 세계로부터 휘둘림을 당하지 않고 자신만의 무대를 즐거이 꾸려 나가는 유재석. 그를 키운 것 중 8할은 '배려'다.







스태프와 주변 동료 두루 챙겨



방송작가 생활 10년 동안, 그를 겪었든 겪지 않았든, 단 한 번도 유재석에 대한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작가를 볼 수 없었다. 그의 겸손과 착한 성품을 두고 '위장'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더더욱 없다. 오랫동안 '진실게임'을 함께 했던 후배 작가는 유재석을 "무더운 여름 그늘 같은 남자, 속시원한 남자"였다며, 남다른 면이 많은 MC라고 했다. 무리한 요구를 해도 "이걸 어떻게 하란 말이야~"라고 볼멘 소리를 하지만, 막상 큐 사인이 들어가면 능청스럽게 두 배, 세 배로 해내는 덕분에 고마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사전에 주말 버라이어티 의상을 상의하러 온 작가에게 옷이 맘에 들지 않으니 다른 의상을 입겠다고 한 적이 있었단다. 알고 보니, 의상이 별로 웃기지 않는다고 더욱 강한 쫄쫄이를 입겠다고 자청한 것이다. 무명 때 메뚜기 탈을 가방에 구겨 넣고 전철에서 울었다지만, 톱스타가 되어서도 망가지기를 서슴지 않는다. 보통 작가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 대개의 톱스타는 화를 내며 일언지하에 거절하거나 묵묵부답으로 응답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모 개그맨에게 댄스로 오프닝을 부탁했다가 사람들 앞에서 아주 호되게 혼쭐났던(?) 나로서는 신기할 노릇이다. 하기야, 결혼식장 기자회견에서조차 기자의 요구에 메뚜기춤까지 춘 유재석이 아니었던가. 주저주저해도, 결국은 더 멋들어지게 해내는 유재석. 얼마 전 제주도 촬영 때는 목이 쉰 상태에서도 혼신을 다한 모습으로 스태프를 감동시켰다고 한다.





그의 남다른 배려는 방송가에서 이미 유명하다. 대기실이 익숙지 않은 신인에게 먼저 다가가 좋은 얘기를 건네주고, 한 번도 건너뛴 적 없이 카메라 감독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살갑게 먼저 인사한다. "아유~ 수고하십니다"라며 악수를 건네는 모습은 유재석의 트레이드마크.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다가도, 배고프다는 스태프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스스럼없이 내미는 남자다.





명절 때 50여 명이 넘는 스태프에게 일일이 사이즈를 물어, 고가의 트레이닝복을 선물하기도 했다. 일본 촬영차 출장을 갔을 때는 고생한다며 막내와 서브작가에게 용돈을 두둑이 건네기도 했다고. 경·조사에 바빠서 가지 못하면 꼭 화환이라도 보낸다. 함께 일했던 VJ가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예의상 줬는데 살인적인 스케줄을 뒤로 하고 일산까지 와 직접 참석한 그를 보고 놀라움과 동시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나경은, 유재석 수다 잘 들어줘



1년 전 '무한도전' 촬영차 아이스크림을 외상으로 먹었던 슈퍼마켓에서 자신이 결혼하면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꼭 1년 후, 이름까지 적은 청첩장을 보내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네티즌은 많은 찬사를 보냈다. 그뿐 아니라 슈퍼마켓 아저씨 얼굴까지 기억해 직접 인사하고 안내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관객이 사인을 거절당하면, 대신해서 연예인 사인을 받아주기도 하고, 녹화가 끝나면 일반인 출연자에게 먼저 다가가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이것이 이제 프로그램의 관례가 됐다는데, 그 기념사진 때문에 출연하고 싶은 일반인이 있을 정도란다.





남을 낮추는 유머는 가끔 통쾌함이 있지만 끝이 씁쓸하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되 남을 높이는 유머는 나도 살고 남도 사는, 일석이조의 방법일 것이다. 유재석은 남이 잘 되는 게 곧 내가 잘 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인기 하향곡선에 실연까지 겹쳐 슬럼프에 빠져 있던 정준하를 '무한도전'을 통해 살려냈고, 박명수를 제8의 전성기이자 거성으로 키워낸 주인공이 유재석이다. 어떤 녹화장에서건 게스트의 썰렁한 농담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순발력 있는 애드리브나 박장대소로 어색한 분위기를 제일 먼저 무마시킨다.





특히 유재석은 화면 밖과 안이 동일한 몇 안 되는 연예인이다. 녹화장에서 MC보다 게스트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사람 유재석. 그에게선 1등을 지켜내야 한다는 그 어떤 강박도 찾아볼 수 없다. 다른 톱스타를 견제하는 눈빛도 없다. 그 여유는 스스로 자신감이 있어서라기보다 이처럼 겸허한 성격에서 비롯하는 게 아닐까 싶다.





돌아보면 그는 연예인이기에 앞서 인간적인 사람이다. 스타의 인간성은 오랫동안 함께 일한 스태프가 가장 정확하게 안다. 그는 스태프가 칭찬하는 최고의 연예인이다. 그에게 '모른 척'은 있을 수 없다.



인기를 얻기 전이나 얻고 나서나 한결같은 스타를 만나보기 힘든 세상이지만, 그는 변함없이 예의바른 모습으로 주변을 대하는 스타다.





유재석은 술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는 수다로 밤을 새울 정도로 수다를 좋아하는데, 조근조근 누구와도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타입이다. 그는 공포영화 마니아인데 공포영화 특유의 장치나 반전에서 새로운 영감을 많이 얻는다. 재미있는 장면은 놓치지 않고 작가들에게 이야기하며 아이디어까지 제시한다.



때로는 실제 녹화보다 후토크가 더 많이 뜨기도 하는데, 경제·시사·문화 등 그 어떤 대화에서도 그는 막힘 없이 수다를 즐긴다. 하지만 딱 한 분야, 뮤지컬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문다고. 함께 일한 작가들이 말하기를 "유재석과 나경은이 맺어진 이유는 유재석의 수다를 재미있게 들어주고, 잘 들어주며 웃는 나경은의 차분한 성품 때문"이라고 전한다.





유재석에게 관심을 갖고 조금만 지켜보면, 평소 배려가 얼마나 몸에 밴 사람인지 알 것이다. 몸개그로 아팠을 후배에게 머리를 감싸주고, 소외된 게스트는 일부러 질문을 던져 꼭 한 번 챙기는 모습. 그처럼 유재석은 언제나 주변에 진심과 정성을 다한다. 티내지 않아도, 성실한 사람에게서 배어 나오는 노력의 성실함도 보인다.



유재석은 포장이나 겉멋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중심을 잡고 뿌리 깊은 통찰을 하는 스타다. 화면을 잠시만 봐도 보이는 그의 겸손에, 진정한 스타의식이란 거들먹거림이 아니라 대중을 향한 소리 없는 배려라는 생각을 해본다.



남미영<방송작가>



"와...이 형, 운전하는 거 엄청 좋아하네? 연예인들은 뭐 하나에 확 꽂힌다더니 재석이 형은 운전을 좋아하는구나!" 노홍철은 최근 < 10 아시아 > 와의 인터뷰에서 유재석과 처음 만났던 시절을 돌이키며 회상했다. 그는 "방송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가 없어서 혼자 녹화하고, 운전하고, 의상 빌리고 반납하느라 잠 잘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MBC '무모한 도전' 같은 걸 하면 재석이 형이 쉬는 시간마다 와서 말을 걸어 줬다. 심지어 이동할 때도 매니저를 그냥 두고 다른 사람들까지 내 차로 불러와서 자기가 운전을 하고 갔다. 어린 마음에 그냥 형이 운전을 좋아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신인인 나를 챙겨주는 거였다. 형은 당시에도 탑이어서 정말 피곤했을 거고 신경 쓸 일도 많았을 텐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런 일들이 더 크게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또 노홍철은 "한 번은 MBC < 놀러와 > 녹화가 굉장히 늦게 끝나 너무 피곤한 날이었는데 재석이 형이 같이 가자고 했다. 의상 반납 때문에 오래 걸리니까 먼저 가시라고 했는데도 형이 내 차를 몰고 가서는 내가 일을 다 마치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 집에 데려다줬다"는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개그맨 노홍철

2011년 2월 24일 목요일

<조선일보사설>[최원규의 법정이야기]할아버지 빚 9000만원 떠안게된 중학생 주환이

2009년 11월 강원도 강릉에 때 이른 첫눈이 내렸을 무렵이었다. 언뜻 봐도
형편이 넉넉지 않아 보이는 중년 여성이 대한법률구조공단 강릉출장소로
들어왔다.

뇌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연수(가명)씨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난 중학생 이주환(가명)군이 그 휠체어를 밀었다.
주환이는 연수씨를 '엄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연수씨는 주환이의 고모였다.

뭔가 답답한 사연이 있어 찾아왔을 텐데 연수씨는 상담직원 앞에서 쉽사리
말문을 열지 않았다. 뇌질환으로 말이 어눌한 탓도 있었겠지만, 삶의 고달픔에
짓눌린 듯한 그의 눈빛은 세상에 대한 불신과 경계로 가득해 보였다. '내 얘길
한다고 해결이 될까. 괜한 짓 하는 건 아닌가….'

그 옆에서 주환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사무실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에게
숙명처럼 드리워진 삶의 그늘을 아이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침묵이 한참 흘렀다. 연수씨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얘가 진 빚 때문에…."

"아니, 아이에게 빚이라니요?"

연수씨는 조카를 아들로 키워온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푹 꺼진 눈은 바닥에
고정됐고, 목소리는 팍팍하게 메말라 있었다.

주환이는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사실상 고아로 자랐다. 엄마는 곧
재혼했고, 아빠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그때부터 고아가
된 아이를 연수씨가 돌봤다. 아이는 고모를 엄마로 알고 자랐다. 아이가 커서
고아라는 사실을 알까 봐 노심초사하며 키웠다고 했다.

'상속된 결핍'은 주환이에게 겹쳐서 다가왔다. 할아버지가 생전(生前)에 보증을
섰다가 진 빚 9000만원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채권자에게서 부실채권(빚보증)을
양도받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주환이를 상대로 빚을 갚으라는 소송을 낸 것이다.
빠듯한 형편의 연수씨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상담직원은 막막했다. 고아가 된 아이, 거기에 뜻밖의 빚 9000만원까지….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이 결핍과 가난을 어떻게 채워줘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법률적으로도 걸림돌이 있었다. 주환이를 도우려면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빚을 갚고 나머지 채무는 탕감받는 한정승인(限定承認)을 법원에
신청해야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사정이 있었다.

한정승인 신청은 상속 채무가 상속 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석 달
이내에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주환이를 상대로 한 소송의 소장(訴狀)이 2009년
6월쯤 주환이 생모(生母)에게 전달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소장이
전달되면 당사자가 관련 사실을 안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한정승인 신청
기한이 한참 지난 상황이 된 것이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소장이 주환이 생모에게 전달된
것은 생모가 주환이의 신분·재산상의 문제에 대한 권리를 가진
친권자(親權者)였기 때문이었다. 미성년자는 법적인 행위능력이 없다. 하지만
생모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엄마와 아들이라는 멀고도 희미한 인연의 고리가
주환이에겐 사슬이 돼 버린 것이다.

연수씨는 더 막막하고 쓸쓸해 보였다. "그래도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야
어찌 살겠지만, 아이가 불쌍해서…."

대한법률구조공단측은 한번 부딪혀보기로 했다. 사건을 맡은 강릉출장소의
나연찬 법무관은 "주환이를 묶고 있는 사슬을 풀어주지 않으면 아이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먼저 생모의 친권을 상실시키고, 연수씨를 후견인으로 지정해 그가 미성년자인
조카를 대신해 한정승인을 신청하기로 했다. 주환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책임이 생모에게 있어서 친권 상실과 후견인 지정 신청을 인정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관건은 기한이 지난 한정승인 신청을 법원이 받아주느냐에 있었다.

나 법무관은 법정에서 주환이의 어려운 사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고는
생모가 소장을 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정승인 신청
기간도 친권 상실과 후견인 지정이 있었던 때부터 진행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한 판례(判例)가 없어 승산은 높지 않았다.

마지막 재판이 있던 날, 상속된 채무액을 확인한 판사는 한동안 주환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딱 한마디를 던졌다. "이 아이에게 더 이상 이런
짐을 지워선 안 되겠네요."

법원은 한정승인 신청을 받아들였고, 주환이는 빚을 탕감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수씨는 주환이를 정식으로 양자(養子)로 기르고 싶다는 뜻을 공단측에
전했다. 입양허가 신청을 거쳐 주환이는 법적으로 고모의 '완전한 아들'이 됐다.

주환이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옆에서 끝까지 지켜준 고모가 있었고, 법도
외면하지 않았다. 툭하면 이혼하는 세상이 된 요즘, 우리 옆집엔 버팀목조차
없는 아이들이 대물림한 빈곤에 비틀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며 자랄 것인가. 한 아이의 부모라는 무거운 운명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질문을 주환이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2011년 1월 5일 수요일

이팔성 회장 "일정규모 이상 저축銀 1~2곳 인수 검토

[이데일리 좌동욱 기자] 국내 주요 금융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금융권 최대
현안중 하나인 부실 저축은행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목소리를 냈다.

저축은행 시스템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결국 그 피해가 은행권까지 돌아온다는 논리에서다. 특히 정부가 소유한
우리금융그룹의 경우 복수의 부실 저축은행 인수를 검토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침까지 공개, 향후 저축은행 업계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축은행 1~2곳 이상의 M&A(인수·합병)를
검토하고 있다"며 "우리금융그룹 규모와 인수 후 시너지 효과를 생각할 때 일정
규모 이상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저축은행이 안정되지 않을 경우 제 1금융권(은행권)에도 여진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금융권 전체가 나서서 저축은행 부실을 안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053000)(15,550원 ▼ 300 -1.89%)은
복수의 저축은행을 인수후 합병하는 등 최소 조단위 이상 저축은행을 계열사로
편입시킬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은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해 턴어라운드시킬 경우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086790)(44,950원 ▼ 50 -0.11%) 회장도 "저축은행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은 금융시장 시스템 리스크로 금융회사들이 협력해서
대처할 필요가 있다"며 "저축은행 시스템 안정을 위해 주요 금융그룹들이
동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주요 금융그룹들이 저축은행 시스템 안정에 기여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부실 저축은행의 대주주들의 책임을 물을 것과 정부 지원안 등
두가지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 회장은 저축은행 M&A나 기금조성과 같은 구체적인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이 회장이나 김 회장 모두 정부가 추진중인 예금보험기금 공동계정 도입안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또 금융당국이나 주요 금융그룹간
사전협의가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모두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그동안 저축은행 부실이나 저축은행 M&A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주요
금융그룹 CEO들이 동시에 부실 저축은행 리스크 해소에 기여하겠다는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과 사전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석동 신임
금융위원장이 취임사에서 금융위의 첫번째 과제로 내세운 것도 `금융시장 안정과
질서 확립`이었다.

2011년 1월 2일 일요일

음력에 대한 생각 ?

우리는 대체로 서양 사람들이 쓰는 양력은 과학적이고, 동양에서 오랜 동안
사용해 온 음력은 미신적이려니 짐작하고 있다. 과학이라는 학문이 서양에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양 사람들이 쓰는 것은 과학적이고,
우리가 써 온 것은
미신적이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선입견은
그야말로 선입견에 불과하다. 오히려 동양 사람들이 줄기차게 지켜온
음력이야말로 과학적이고, 서양이 사용해 온 양력이야말로 미신투성이인 것이다.
음력은 날이 가는 것은 달의 운동으로 기준을 삼고, 계절의 변화는 24절기로
나타내어 달과 해의 움직임을 그대로 나타내려고 노력해 만든 순전히 과학적인
역법이다. 당연히 우리는 음력을 사용할 때면 계절을 알기 위해서는 24절기를
보며, 날짜는 달모양을 알기 위해서만 사용할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양력을 오래 쓰는 동안 익숙해진 대로 날짜로써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려 하며, '토정비결'을 비롯한 전통적 역술 행위(흔히 미신으로
치부되어지고 마는)가 모두 음력을 기준으로 지켜지는 것에 주목하곤 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음력은 미신 투성이이고, 양력이야말로 과학적이거니 지레
판단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양력은 아무 의미도 없이 정해진 1월 1일이
새해 시작의 날이 된다. 또 양력에서는 구태여 한 달의 날짜 수를 지금처럼
불규칙적으로 바꿀 필요가 없는데도 7월과 8월은 연속으로 31일씩인가 하면,
2월은 평년인 경우 28일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로마 황제 율리우스 시저와 아우구스투스의 출생월(出生月)을
하루라도 더 길게 기념하기 위해서 생긴 전통 때문이다.
자연의 어느 것이 새로 생겨나거나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는 날도 아니건만
양력 1월 1일은 우리 전통적 설날 대신 기념하여 3일씩이나 쉬던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이런 점들에 대한 문제 제기들이 관철되어
1989년부터 우리는 '민속의 날' 대신 '설날' 이란 말을
되찾고 음력 설날 3일 연휴를 즐기게 되었다. 내친 김에 음력 속에 있는 양력
성분인 24절기를 널리 보급하여 일상적으로 활용할 것까지도 권장한다. 이렇게
다소 엉뚱하게 양력과 음력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은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과학적'이라는
말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리해보려는 뜻에서다. 우리가 '과학' 의 기준으로 흔히
쓰는 잣대 중 하나는 바로 서양 것은'과학적'이고 우리의 전통적인 것은
'비과학적' 이라는 태도이다. 바로 이러한 잣대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앞에서처럼 양력과
음력의 간단한 비교를 통해 설명해 보려 한 것이다. 세계가 이미 양력으로
통일되어 버린 지금, 우리가 새삼 음력으로 세상의 역법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
뻔하긴 하다. 하지만 만약 동양이 서양을 지배하는 가운데 세계화 과정이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면 우리는 지금쯤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고 음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긴 나는 실제로도
날씨의 변화와 계절을 살필 때 음력과 24절기를 살펴본다. 왜냐면 양력과 자연의
변화가 일반적으로도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24절기를
누가 만들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24절기는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옛날 중국에 카톨릭을 뿌리내린 인물인 마테오 리치 신부님이 동양
학문을 두루 셥렵한 후
만드신 것이고 우리나라에도 건너와 다산 정약용 등 많은 유학자들이 본
'천주실의'란 책도 쓰셨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들이 은미 중에 끼친 공덕도
아주 많습니다.